영화에서나 나왔을 법한, 옛날의 중국 비슷하게 꾸며진 방 안을 마구 돌아다니며 주운 한지 조각들에 되도록 고르게 펀치를 찍었다. 고르게는 개뿔, 색색의 한지 조각은 색색의 쓰레기가 된다. 우라질, 이놈의 펀치 내가 쓰던 거랑 X나 똑같네 그려. 이런 옛날에 어떻게 이런 기계가 있는지 몰라도 지금은 그런 게 아무 것도 궁금하지 않다. 지금은 오전 열시, 그리고 정오가 되면 나는 죽는다. 사형이나 다름없는 처우니까. 결투우우? 진짜 있는지도 몰랐던-하지만 눈으로 확인해봤기에 믿지 않을 수가 없어졌다, 젠장- 경공이니 무술이니 검술이니 하는 걸 휘두르는 놈이랑 결투를 하라니? 나는 맨몸이라고! 칼이라고는 식칼밖에 안 써봤단 말이다! 쌈박질도 스포츠도 나랑은 거리가 멀다고! 책을 쥐고 살아왔던 내게!! 하지만 이 빌어먹을 과거는 인권을 인정하지 않을 뿐더러 공평성이라는 말도 어디다 갔다버린 모양이다. 더럽다, 뭔가 다른 구린 이유가 있는건지 아니면 단지 내가 뚝 떨어져있던 곳이 X나 크다는 황실의 뒷정원 어딘가여서인지 몰라도 황자니 하는 놈이 일주일간 나를 맡아둔 게 내게 주어진
'특혜'의 전부였다. 그 일주일도 아무런 접촉도 없이 이 몇칸 안되는 창고 비슷한 곳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채 감금되었던 걸 감안하면 차라리 저 기둥에 매달 천을 달라고 해볼껄 그랬다. 시발, 죽일거면 곱게 죽이면 좀 좋아. 일주일만에 보는 황자라는 놈은 정신사납게 돌아다니며 말도 안되는 말을 쏟아내는 나를 즐기듯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고 그 황자의 시녀라는 년은 내 속을 벅벅 긁는다. 포기하고 죽어서 황실을 지키는 귀신이나 되면 되는 거예요? 이런 시발 영혼의 비존재가 증명된지가 언젠데 수호신같은 소리를 하고 지랄이야! 하지만 전공도 아닐 뿐더러 물증도 내놓지 못한 나는 곧 시녀의 기세에 말려들어가 입을 다물게 되었다. 애꿎은 펀치를 바닥에 내던지며 황자에게 말을 건다. 아니, 부탁한다. 당신은 명예니 뭐니가 걸렸는지 몰라도 나는 아무 것도 없고, 내 패배는 당연한 일이고, 황실법도대로 고문당해가며 죽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간단하게 죽을 수 있는 게 있으면 내놓으라고. 황자는 웃으며 그러도록 하지, 라고 대답했다.